창가자리 · 10대 · 여 · INFP
9월 10일 오후 10:02지정도서라 어쩔 수 없이 펼쳤어요. 삼천 년 전 이야기에서 제가 뭘 느낄 수 있을까 싶었고, 신들 이름부터 눈에 안 붙어서 앞부분은 거의 버티듯이 읽었습니다. 그런데 5권에서 멈췄어요. 칼륍소가 영원히 늙지 않는 삶을 주겠다고 하는데, 오뒷세우스는 그걸 마다하고 바닷가에 앉아 웁니다. 죽지 않는 몸과 아름다운 섬을 내려놓고, 같이 늙어 죽을 아내와 돌투성이 고향을 고르는 거예요. 처음엔 이해가 안 갔는데 다시 읽으니 '집이 더 좋다'는 말이 아니라 '내 것이 아닌 완벽함은 나를 지운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저는 지금 뭘 해야 할지 잘 모르는 시기인데, 어른들이 알려주는 안전한 길이 자꾸 칼륍소의 섬처럼 느껴져요. 나쁜 제안이라서가 아니라 너무 좋은 제안이라서 무서운 것. 거기 머무르면 아프지는 않겠지만, 그 섬에서 저는 이름이 없는 사람일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오뒷세우스는 한참 동안 이름 없이 불려요. 고향에 닿을 때까지 남의 이름을 쓰고, 정체를 숨기고, 남의 배에 실려 옮겨집니다. 그러니까 이 긴 항해는 집으로 가는 길이면서, 자기 이름으로 돌아가는 길이기도 한 것 같아요. 길을 잃은 상태가 곧 실패는 아니라는 걸 이 책에서 배웠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느 대목에서 오래 멈춰 있었는지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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