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는자 · 20대 · 여 · INTJ
9월 10일 오후 10:02모험담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저는 이 작품을 이름을 잃었다가 절차대로 되찾는 이야기로 읽었습니다. 근거는 배치입니다. 첫째, 주인공이 1권에 없습니다. 이야기는 아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데서 시작하고, 오뒷세우스는 5권에 가서야 '감추는 여신'의 섬에 붙잡힌 상태로 처음 나옵니다. 칼륍소라는 이름 자체가 덮어 감춘다는 뜻입니다. 주인공을 이름째로 지워둔 자리에서 출발하는 구성입니다. 둘째, 그가 통과하는 시련의 종류가 겹칩니다. 로토파고스족의 열매는 돌아갈 곳을 잊게 하고, 키르케의 약은 사람을 돼지로 만들고, 세이렌은 이름과 명예를 불러 배를 세웁니다. 파도나 괴물이 아니라 기억과 형상과 명예를 하나씩 겨냥합니다. 무엇이 사람을 그 사람이게 하는지 항목별로 시험하는 구조입니다. 셋째, 그래서 고향에 닿은 뒤에도 그는 곧바로 이름을 말하지 않습니다. 거지로 위장해 집을 관찰하고, 누가 배신했는지 확인하고, 순서를 정해 신분을 밝힙니다. 아들, 유모, 돼지치기, 아내, 아버지. 잃는 데 순서가 있었으니 되찾는 데도 순서가 있습니다. 기원전 8세기 텍스트가 이만큼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다만 왜 하필 이 순서인지는 아직 답을 못 찾았습니다. 아내가 아버지보다 앞이고 돼지치기보다 뒤인 이유를 같이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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