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론환영 · 30대 · 남 · ENTP
9월 10일 오후 10:03불편한 사실부터 짚겠습니다. 오뒷세우스는 부하를 한 명도 데려오지 못한 지휘관입니다. 배 열두 척으로 떠나 혼자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 서사시는 그를 실패한 지휘관으로 그리지 않고, 그 점을 따지지도 않습니다. 저는 이 이상한 관대함이 작품의 성격을 알려준다고 봅니다. 여기서 상을 받는 능력은 통솔이나 무력이 아니라, 살아서 협상하는 머리입니다. 가장 좋았던 건 세이렌 구간입니다. 보통 유혹을 참아낸 이야기로 읽히는데, 그가 한 일은 참는 게 아닙니다. 그는 자기가 못 참을 것을 먼저 인정합니다. 선원들 귀는 밀랍으로 막고, 자기 몸은 돛대에 결박하게 하고, 풀어달라고 애원하면 더 조이라고 미리 명령합니다. 듣고 싶은 욕망은 포기하지 않은 채 파멸만 제거한 겁니다. 재미있는 건 이게 미래의 자기 자신을 못 믿는 설계라는 점입니다. 의지력을 키우는 대신 상황의 구조를 바꿉니다. 결심으로 안 되는 일을 장치로 푸는 요즘 방식이 삼천 년 전에 이미 나와 있는 셈입니다. 신들은 시종 변덕스럽습니다. 이유 없이 바다를 뒤집고 이유 없이 돕습니다. 규칙이 공정하지 않은 판에서 이 인간은 규칙과 싸우지 않고 규칙을 우회합니다. 도덕적으로 훌륭한 태도는 아닙니다. 다만 설득력은 있습니다. 이 대목은 반론이 있을 것 같아서 오히려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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